본문 바로가기

이야기

액자





우거진 녹림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 그리고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 호수. 호수 가장자리에 자란 나무와 그 위에 앉아있는 이름 모를 작은 새. 뷰 파인더를 통해 그 새를 조용히 지켜본다. 부리로 깃털을 손질하던 새가 날개를 살짝 펼친다. 아직은 아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지켜 보자. 날개를 펼치고 날아 오르려는 순간 조용히 검지에 힘을 준다.

-찰칵

찰나의 섬광과 함께 경쾌한 셔터음이 연주된다. 셔터를 누르기 전부터 셔터를 누르고 난 후까지 손의 떨림은 극히 미비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사진이 나올 거 같다. 안도의 쉼을 내 쉬고 액정을 확인해 본다. 정말이지 세상 참 좋아 진 거 같다. 디지털 카메라, 일명 디카란 녀석이 나오기 전만해도 필름을 다 쓰고 현상을 하기 전 까지는 사진이 잘 찍혔는지 아닌지 전혀 확인을 할 수 없어서 불안 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찍는 순간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예전의 그 기다림의 시간이, 두근거리는 마음이 사라진 건 조금 아쉽다.

“이런……”

액정을 다시 확인을 해 보아도 사진은 변하지 않는다. 분명 이번 사진은 실패작이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아오르려는 새를 촬영 하려고 했지만 이건 실패다. 새는 이미 나무를 박차고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대체 이번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지난 6개월간 저 녀석을 쫓아 카메라를 들고 다녔지만 녀석은 번번히 날 조롱이라도 하듯이 피해간다. 아주 절묘하게. 차라리 완전히 빗 나갔으면 이렇게 아쉽지는 않을 텐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빗나가니 그게 더 얄밉다.

-=

사람들은 내 방에 들어오면 깜짝 놀란다. 병과 천장, 빈틈이 없이 수 많은 사진으로 가득 차있다. 하나하나의 사진은 각기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촬영하였지만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하나의 거대한 풍경화와 같은 형상이 되어 버린다. 마치 거대한 풍경을 파노라마의 형태로 촬영한 것처럼 보이도록 사진을 붙였다. 정면에 펼쳐진 거대한 호수. 그 한쪽 귀퉁이에 지어진 작은 정자와 호수 위에 펼쳐진 연꽃 잎의 녹림. 좌우 벽에 펼치진 수목들은 마치 숲 속에 있는 고즈넉한 호수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 한다. 이렇게 멋진 풍경에 단 하나의 오점이 있다면 정면 벽에 걸린 액자. 우측 벽에 뿌리를 내려 정면의 호수 위로까지 가지가 뻗은 고목의 나뭇가지 위에 위치한 저 액자는 비어있다. 새하얀 백지. 유일하게 걸려있는 액자이면서 방안 풍경의 오점. 전체의 분위기를 깨트리는 저 액자. 분명 액자 틀은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하여 주변의 경관, 나무와 하늘에 잘 어울리지만 그 속이 비어있다. 저 속을 채울 사진은 수십, 수백장을 찍었지만 모두다 미스샷이었다. 어제 찍은 그 사진처럼.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는 찰나의 모습.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은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동영상 촬영을 하여 프레임을 나누어 쓸만한 사진을 얻은 적은 있지만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모습이. 한 순간의 포착으로 얻어낸 사진이 아닌 인공적으로 시간을 잘라서 만들어 낸 사진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다. 그 시간의 모든 것. 말로는 설명 할 수 없지만 찰나의 순간, 시간을 분으로 나누고 그 분을 초로, 초를
이 순간에 담겨있는 모든 것. 햇빛, 바람, 새, 시간이 담긴 그런 사진.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선, 아니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전까진 저 액자는 비어 있을 것이다.

-=

창 밖을 보니 햇살이 아주 곱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엔 따듯한 냄새가 배어있고 약간의 뭉게구름이 푸른 하늘에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청바지에 가벼운 티를 입고 모자를 쓴다. 목에는 카메라를 들고 가로질러 맨 가방에 여분의 배터리를 챙겨 들고 나선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간다. 그 이름 모를 새가 있는 공원으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색 숲  (0) 2012.05.09
길 위에서  (0) 2007.11.05
단월  (0) 2007.11.05